황정은 디디의 우산 줄거리와 감상문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은 2019년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로 두 중편,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묶은 연작 소설입니다.

본 서평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들을 녹여낸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독후 감상문을 정리한 글입니다.

소설 배경

소설은 1996년의 연대 사태, 2008년의 명박산성,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의 비극, 2016년 촛불 혁명,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비극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연작 소설<디디의 우산>은 2010년 발표한 단편 「디디의 우산」(파씨의 입문, 창비 2012)과,  2014년작 단편 「웃는 남자」(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를 개작한 <d>와 ‘문학3’ 웹 연재소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엮은 작품입니다.  

작품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사이에는 한 페이지에 짤막한 문장 하나가 강렬하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파씨의 입문, 2012

무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는 문장은 소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잇는 가교이자,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을 왜 영어로, 그것도 왜 소문자로 지칭했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d>의 모태가 된 단편 「디디의 우산」과 「웃는 남자」의 주인공은 도도와 디디였는데 말입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영어 소문자로 바뀐 것은 고유명사화할 수 없는 파편 같았던 주인공들의 애환을 담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황정은 프로필

황정은의 소설에는 용산참사를 연상시키는 상가의 풍경이 많이 묘사됩니다. 이 작품에서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고된 물류 일을 하는 ‘d’와 세운상가에서 음향기기 수리를 수십년간 해온 ‘여소녀’가 등장합니다. (‘여소녀’는 여자가 아니라 단지 이름일 뿐입니다.)

이는 세운상가에서 오디오 전문 수리 기사로 일했던 작가의 아버지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1년 만에 중퇴하고 아버지 일을 돕기도 하면서 신문배달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마더>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장편소설로는 <百의 그림자>(2010), <야만적인 앨리스 씨>(2013), <계속해보겠습니다>(2014)가 있습니다.

소설집으로는 <일곱 시 삼십이 분 코끼리열차>(2008), <파씨의 입문>(2012), <아무도 아닌>(2016), <디디의 우산>(2019), <연년세세>(2020)가 있습니다.

황정은 작가의 수상이력은 화려합니다. 2010년 한국일보문학상, 2012년 제30회 신동엽문학상, 2014년 제5회 젊은작가상, 2014년 제15회 이효석문학상, 2015년 제23회 대산문학상, 2017년 제11회 김유정문학상, 2019년 제34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작가는 2014년 현대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현대문학이 이제하의 장편소설 <일어서라 삼손>에 박정희 유신과 6월 항쟁이 들어 있다하여 연재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이력에 현대문학상이 없다는 것에 자부를 느낍니다.

디디의 우산 이미지
책 이미지

디디의 우산 줄거리

중편 <d> 줄거리

d는 동참 모임에서 그에게서 빌려간 우산을 돌려주는 dd(디디)를 만납니다. 둘은 동거를 하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디디가 죽고 난 후 d는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세운상가에서 고된 육체노동,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몸으로 때웁니다. 

세운상가에서 음향 수리업을 하는 ‘여소녀’를 만나 음악을 알게 되고 디디를 더욱 그리워하면서 d는 2016 촛불혁명의 광장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중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줄거리

‘나’는 완성하지 못한 열두 개의 원고를 지닌 작가로 고등학교 동창 서수경과 20년째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1996년, 이른바 ‘연대 사태’ 때 연세대 종합관에 갇혔던 나와 서수경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명박산성과 세월호의 비극을 함께 겪으며 마침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었던 오후를 함께 보냅니다.

디디의 우산 감상평

황정은 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동성 커플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d와 dd, 나와 서수경이 동성커플입니다.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소외받고 연약한 존재들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보통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그늘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작가의 소망이 느껴집니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시적 운율이 느껴지는 문장들인데, 이 연작소설은 하드보일드에 가깝다고 할까요? 소설이라기보다 사회과학서 한 권을 읽은 기분이 드는 묘한 책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황정은은 “욕이 조금 늘었다’고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젠더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작가는 나와 서수경이 전투경찰에게 쫓겨 연세대 종합관에 9일 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상황, 경찰이 학생들에게 식량도, 의약품도, 심지어 여성용 위생용품조차 반입시키지 않았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굶주림과 목마름, 야간 기습과 체포에 대한 공포, 더위와 습기와 화학약품 부작용으로 문드러진 동기생의 등, 만지지 않아도 상태가 느껴지는 타인의 피부, 세수 한 번과 양치 한 번에 대한 끔찍한 갈망, 그리고 “보지는 어떻게 씻었냐 더러운 년들.”

글쎄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읽고 나면 우리 사회가 이토록 암울한 터널을 지나온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둔감해질 수밖에 없고,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쉽게 잘 잊는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혁명을 배경으로 하지만 혁명을 직접적으로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의 계절에 의미 있는 작품을 하나 읽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입니다.

인상 깊었던 구절

나한테 뼈 한 조각을 줘.
뼈?
네가 먼저 죽으면.
소용이 있나.
그냥 가지고 있으려고.
가져라. 두 개 가져도 돼.
내 것도 줄까?
나는 필요 없어.
왜, 내 뼈가 필요 없어? 왜.
무슨 소용이야 네가 죽고 나면.
줄게 받아라.
그래 그러면.

위 대사는 나와 서수경의 대화입니다. 동성 커플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둘은 늘 서로의 죽음 이후를 염려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사소한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게 나라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산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우산이 필요한 순간, 우산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소설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리뷰를 마칩니다.

관련 소설

이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우리 시대의 소설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도 추천 드립니다. <디디의 우산>에 현대사의 아픔이 스며 있다면, <밤은 노래한다>는 근대사의 아픔이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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