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책 추천, 위험한 비너스, 반전 끝판왕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험한 비너스>(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7)는 지금까지 읽은 그의 추리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반전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 허를 찔렀다.

그 반전에 뒤통수를 아주 세게 맞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다음 소설은 꼭 범인을 맞추고 말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위험한 비너스>는 특히 완전 그랬다. 독자에게 정보를 완전히 제공하지 않았으니 반칙이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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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1958년생으로 올해 65세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꾸준히 매년 한 두 편씩 소설을 발표하는 그의 성실성에 절로 감탄을 표하게 되는 작가이다.

위험한 비너스 줄거리

이 추리 소설의 주인공은 이케다 동물병원 수의사 데시마 하쿠로이다. 하쿠로가 갈색 얼룩무늬 수컷 고양이의 항문낭을 한참 치료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걸어 온 여자는 하쿠로보다 아홉 살 어린 이부동생 아키토의 아내 가에데였다. 하쿠로가 여덟 살 때 엄마 데이코가 의료계 재벌 야가미 고노스케의 아들 야스하루와 재혼하여 낳은 아들이 아키토였다. 하쿠로와 아키토는 어른이 되면서 왕래가 별로 없는 사이였다.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가에데라는 여자는 아키토와 작년 말에 시애틀에서 주위에 알리지 않은 채 둘이서만 결혼을 했다며 말끝마다 하쿠로에게 아주버님, 아주버님, 하고 애교를 떨었다. 전직이 스튜어디스라고 했다.

시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에 귀국했는데 아키토가 메모를 남기고 돌연 행방불명이 되었고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별 반응이 없다며 하쿠로에게 시아버지 병문안 동행을 요청하는 거였다.

작은 미션이 있어서 외출한다. 어쩌면 한동안 못 돌아올 수도 있어.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그리고 그럴 경우, 미안하지만 아버지 병문안은 당신 혼자서 다녀오면 좋겠어. 잘 부탁해, 아키토.
– 아키토가 남긴 메모, 본문 56쪽

하쿠로는 새 아버지 야스하루가 잘 해 주었지만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고 총명한 동생 아키토가 태어나자 관계는 더 소원해졌다. 어린 시절, 전업 주부인 이모 준코와 수학 교수인 이모부 겐조의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야가미 성을 쓰지 않고 친 아빠의 성인 데시마를 고집했다.

지금까지 하쿠로는 야가미가와는 연을 끊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쿠로는 가에데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병문안에 동행하게 되면서 야가미 가문과 다시 얽히게 되고 이 사건에도 휘말리게 된다. 왜 그랬을까?

“선생님은 누군가를 금세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 본문 265쪽

이케다 동물 병원의 간호사 가에야마 모토미가 한 말이다. 하쿠로는 간호사 모토미를 보자마자 무턱대고 그를 좋아했었다. 미니스커트 아래로 보이는 다리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가슴골을 보면 육감적이라고 늘 생각한다.

이는 <위험한 비너스>에 등장하는 하쿠로 만의 관습이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작가가 여성들을 바라볼 때도 그렇게 보고 있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다.

사실, 그의 소설에는 노골적으로 이러한 시선들을 필요 이상으로 빈번하게 묘사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무튼, 하쿠로는 가에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하쿠로는 병문안을 가고, 급기야 나미에 고모가 주관하는 야가미 가의 가족 회의에도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나미에는 야스하루의 친 여동생이다.

복잡한 구성원의 야가미 가 가족회의

유산 상속을 위한 야가미 가의 가족 회의에 참석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야가미 고노스케의 복잡한 여자 관계가 드러난다.

가족 모임에는 고노스케의 두 번째 아내가 낳은 딸 쇼코가 남편 하세쿠라 다카시와 딸 유리카를 데리고 참석해 있다. 60대인 쇼코는 야스하루의 이복 여동생인 셈이다.

유리카는 이십 대 아가씨로 하쿠로의 관찰에 의하면 미인이다. 하쿠로는 습관처럼 가슴 쪽을 일별하지만 베이지색 원피스에 감싸인 몸매를 유추할 수 없어 실망한 모습이다.

고노스케의 두 번째 아내가 낳은 마키오도 참석했다. 50대 중반으로 다이호 대학 의학부 신경생리학과 괴짜 연구원이다. 야스하루가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 연구를 할 때 조수로 일했다.

마지막으로 고노스케의 세 번째 아내 사요와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 유마, 둘 다 고노스케의 양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아내가 왜 양자가 되었을까? 고노스케의 유산을 상속 받는데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일본 관습이 좀 이상하긴 하다.

하루코는 어렸을 때, 첩의 자식이라고 자신을 경멸하고 괴롭히던 유마를 떠올렸다. 유마는 흐물흐물 불쾌한 눈으로 하루코와 함께 참석한 가에데의 몸매를 위 아래로 훓었다.

20년 전, 의료재벌 고노스케는 사망할 때 유산을 손자 아키토에서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야스하루의 제안으로 야가미 종합병원과 저택 만 아카토에게 상속하기로 하고 나머지 사업체는 처분하고 현금성 자산은 형제들이 5분의 1로 동등하게 나눠 가졌다. 단, 야가미엔 실버타운은 현금 상속을 사양한 쇼코 부부가 물려받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가족회의는 야스하루가 죽고나면 아키토에게 저택 등을 물려받는다는 유언을 재확인하고 20년 전에 미처 분배하지 못했던 그림과 도자기 등 얼추 1억엔에 달하는 골동품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쿠로와 가에데는 일단 아키토가 일이 너무 바빠서 귀국하지 못했다며 행방불명된 사실을 감추고 이들 중에 누가 아키토의 행방불명과 관계가 있는지 살피기 시작한다. 이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아키토가 행방불명 되면 이들 중에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아키도를 납치한 범인은 누구일까?

하쿠로와 가에데는 아키토의 행방을 찾기 위하여 공조 수사에 가까운 협력을 한다. 둘이 함께 고생을 하면 할수록 하쿠로는 가에데의 매력에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 질척한 늪에 두 발이 서서히 빠져들어 가 듯이.

어슴푸레한 차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쿠로의 마음은 거칠게 흔들렸다. 이대로 팔을 내밀어 끌어안으면 스르르 눈을 감고 입술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하쿠로는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과 같은 프랙털 그림을 그린 서번트 환자의 자녀를 가에데와 함께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본문 356쪽)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뿌려놓은 떡밥들

여기까지 작가가 제시한 정보만으로는 아키도가 왜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는지, 누가 납치라도 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작가는 독자들의 추리를 더욱 혼동 시키기 위하여 떡밥을 더 뿌리기 시작한다.

33년 전, 하쿠로의 친 아버지가 죽기 전 그린 마지막 그림의 행방

하쿠로의 친 아버지 데시마 가즈키요는 무명화가였다. 하쿠로의 어머니 데이코는 남편이 뇌종양이 발병하자 고교 동창 사요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사요는 남편 고노스케에게 그 말을 옮겼고, 고노스케는 아들이자 신경과 전문의인 야스하루에게 치료를 지시했다.

야스하루는 승인받지 않은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인체 실험으로 데시마를 치료했고 데시마는 극적으로 호전되었으나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며 프랙털 도형 같은 이상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데시마는 ‘관서의 망’이라는 이름 붙인 그 그림을 이모부 겐조가 위대한 예술의 탄생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인간이 그릴 그림은 아니라며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사망하고 말았다.

데시마의 사망에 죄책감을 느낀 야스하루는 그 뒤로 인체 실험을 중단하고 미망인 데이코와 결혼하고 아키토를 낳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고교동창 사요와 데이코는 하쿠로의 아버지를 매개로 해서 고부 사이가 됐던 것이다. 이 무슨 막장 드라마의 기운?

어쨌든, 데시마가 마지막으로 그린 ‘관서의 망’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쿠로의 어머니의 유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이모댁에서도 그 그림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림을 촬영하여 보관한 앨범에서도 그 그림만 쏙 빠져 있었다. 이모부 겐조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16년 전 의문의 어머니의 죽음

하쿠로의 어머니 데이코는 친정 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 친정집을 관리하기 위해 자주 들렀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코가 친정집 욕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 당시 경찰은 뇌진탕에 의한 단순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하였다.

하쿠로는 어머니가 죽고 나서 외가가 철거된 공터 사진을 받아보고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하쿠로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외가를 찾았을 때, 외가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귀신에 홀린 듯한 하쿠로는 어머니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가 아닐 거라고 강하게 의심하던 이부동생 아키도의 말을 떠올렸다.

자, 여기까지 작가가 뿌려 놓은 모든 떡밥을 정리했다. 물론 이 외에도 사소한 떡밥들은 많지만 결말에도 관계가 없어 여기서는 생략한다.

독자 여러분은 아키토가 왜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는지, 그의 행방불명이 야가미 가문의 구성원 중 누가 벌인 일인지 짐작이 가는가? 나로서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하 정리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결말은 소설을 읽어볼 의향이 있으신 분은 꼭 소설을 읽고 난 이후에 보시기를 추천한다. 모든 추리 소설이 그렇지만 특히, 이 소설은 스포일러를 알고 보면 읽는 재미가 너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위험한 비너스 결말(스포일러)

이 추리 소설의 결말은 허망한 구석이 다분하다. 독자들이 예상한 용의선상 리스트에서 범인은 없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 작가의 역량이기도 한데, 이건 좀 반칙 같다.

먼저 이 소설의 제목 위험한 비너스로 인하여 독자들은 추리에 실패한다.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므로 범인은 당연히 그와 관계된 성일 것으로 일단 추리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제 1 용의자는 가에데이다. 그녀는 어느 날 뜬금없이 불쑥 나타나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아키도와 결혼한 여자이고, 아키도는 행방불명 됐으며, 유산을 분배하는 가족회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하쿠로에게도, 유마에게도 유혹적으로 행동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상정한 위험한 비너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데시마의 그림 ‘관서의 망’이었다. 좀 비약적이긴 하지만, 인간이 신의 영역으로 도전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자가는 제목 비너스라는 명사를 썼다.

그럼 범인은 누구? 바로 이모부 겐조다. 그가 왜 그런 짓을 했냐고? 수학을 사랑한 겐조는 ‘관서의 망’이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위대한 그림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 하쿠로의 어머니 데이코를 살해했으며, 마지막에는 하쿠로의 외가까지 불을 질렀던 것이다.

그럼 가에데는? 가에데는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잠입한 경찰이었다. 겐조가 아키토를 납치할 인물들을 인터넷에서 모집했는데 경찰이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선수를 쳤던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소설에서 가장 허술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추리 소설도 이런 결말이다. 사실 킬링타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만한 것도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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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신예 작가 무라세 다케시의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김지연 옮김, 모모, 2022)도 상당히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판파지 소설로 추천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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